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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빠니샤드의 아난다(ānanda)에 대한 의미론적 이해
우빠니샤드의 아난다(ānanda)에 대한 의미론적 이해
요가학연구소2022-11-03

우빠니샤드의 아난다(ānanda)에 대한 의미론적 이해

인도의 여러 전통에서 아난다는 인간의 모든 욕망, 모든 고통,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일반적인 기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상태, 윤회의 끝을 동반하는 인간의 마지막 존재로서의 최고점인 해탈로 정의되기도 한다. 인도의 철학과 종교의 대부분이 의지하게 되는 공통적인 기반인 우빠니샤드에서는 브라흐만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면서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을 알게 되면 모든 허망 분별을 벗어나 ‘환희로 충만한’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어 모든 세상의 속성들을 버리고 슬픔을 여의어 이룰 것을 이룬 자가 된다고 가르친다.

아난다의 어원과 다양한 의미

아난다는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한 상태로, 산스끄리뜨 사전에서 아난다는 행복, 즐거움, 신의 최고의 마음, 무언가를 희망하는, 어떤 것을 대단히 즐기는 것으로 RV, AV, VS(M)에서는 감각적인 즐거움으로도 설명된다.
Patrick Olivelle에 의하면, 아난다의 어원은 nandi와 함께 동일한 어근 √nand ‘기뻐하다’ 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그 명사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접두사 ā, 명사 nanda로 접두사 ā는 단어의 행위가 나타나는 장소를 나타내며 아난다라는 단어는 환희를 발견하는 것, 아들이 있는, 희망으로 가득 찬…어떤 대상을 암시하는 장소의 영향을 받아 실현하는 상태라고 이야기한다.

오래 전부터 정신문명이 꽃피웠던 인도에서는 ‘환희’ 가 철학적인 토대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아난다는 학파 전통과 학자에 따라 여러 관점들을 지닌다. Swami Vivekananda에 의하면, 힌두 철학에는 성취의 여러 방법들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다르고,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아난다의 길을 선택하기 때문에 아난다의 다양한 관점에는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Sri Aurobindo에 의하면 아난다는 휴머니티의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이지만, 인류는 성공을 이루기 위해 이원성의 고통과 즐거움을 개발하였고, 마음을 계속해서 일으키며 아픔과 고통의 습관들을 생기게 한다고 말한다.  Ramana Maharshi는 아난다를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우빠니샤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유일한 정통학파인 베단타 학파에 따르면, 아난다는 모든 죄와 모든 즐거움,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일반적인 기쁨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숭고한 기쁨의 상태이며 이는 재탄생의 사이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박띠 전통에서의 아난다는 신과 완전히 결합하여 누리는 합일의 상태로, 모든 에고를 오직 신성한 은총에 복종시켜 종합적인 성취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샹크야 관점에서는 아난다를 뿌루샤 라기보다는 결과로서의 쁘라끄리띠로 보며, 요가적 관점에의 아난다는 vitarka, vicāra, asmita와 함께 samādhi의 4개의 삼매상태이거나, 짧은 의식의 자유 상태로 이야기한다.
니야야와 와이셰시까에서는 ‘긍정적인 감정조차 없는’ 자유의 상태를 아난다라고 본다. ‘바가바드기타’ 에서는 아난다라는 단어의 사용은 없지만, 진정한 요기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마지막 환희로 ‘sukha’(주로 행복을 뜻함)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불교, 자이나교에서는 아난다와 비슷한 의미로써 궁극의 자유의 상태를 ‘sukha’ 라는 단어를 우선시하여 사용한다.

우빠니샤드 이전 문헌에서 아난다의 의미

아난다의 기원은 고대인도로부터의 지혜가 그대로 담겨 있는 인도의 종교와 신화 및 철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베다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초기 베다에서 아난다는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는데 베다의 근본이 되는 RV의 소마찬가에서 소마가 부서지면서 아난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기쁨이 가득한 불멸의 세계로 이끈다. AV(S)의 희생제와 야주르베다 상히따의 TS만트라 부분에서 아난다는 몸의 부분(주로 남성의 페니스)과 연관하며 진행되는 격렬한 기쁨의 표현, 주로 성적 황홀감으로 쓰이며 성적 황홀감은 욕망의 만족으로 이어진다. 또한 아난다는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오기를 희망하는 식물들의 기쁨의 상태에 대한 은유로 쓰이는데 이와 같은 표현은 우빠니샤드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Vajasaneyi에서는 여성의 성적 기관을 아난다가 만들어지는 장소로, 쾌감의 결과로 자식을 얻는 기쁨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

초기 베다 문헌에서 아난다가 비교적 단순한 즐거움으로 사용된 반면 브라흐마나 시대로 와서 아난다는 점차 비유적인 표현이 늘고 문맥 안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 및 용어와의 연관성을 통해 함축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아난다의 성적 황홀감은 깊은 잠의 상태인 ‘의식을 잃음’ 과 비유되고 SB(M) 10.3.5.12-14의 연속된 인용구에서 아난다는 음식과 연관하여 맛(rasa)은 조금의 양이더라도 음식 전체의 맛을 향상시키고 전체에 스며들기 때문에 맛으로 포만감을 가진 사람은 만족스러우며 이러한 비밀스러운 지식을 아는 사람은 아난다로 구성된 아뜨만을 얻어 신이 된다. 아난다와 음식과의 연관성은 맛(rasa)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 중 하나인 정자(retas)로 이해할 경우, 음식으로 가득 차 만족스러운 상태는 TB에서 쁘라자빠띠가 성적 결합의 상태에서 정자로 가득 찬 그의 페니스로 만족(tṛpti)에 이르는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KsB에서 아난다는 모든 즐거움(음식, 마시는 것, 성적 황홀감)들이 밤까지 함께 기뻐하는 것으로, 모든 즐거움은 음식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말한다. 마시는 것은 RV찬가에서 쏘마즙을 섭취하여 환희를 느끼는 상태로 연상되며 쏘마즙이 정자(retas)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다음 세대의 자식을 보는 것으로 비유된다는 점은 모든 즐거움들이 문맥 안에서 서로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맛’ 이라는 공통된 것으로 부터 파생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빠니샤드에 나타난 아난다

브라흐마나시대의 복잡하고 까다로워진 제의식과 형식주의에 대한 혐오는 우빠니샤드 시대로 이행됨에 따라 외부대상으로부터 내면세계로 관심이 이양되어 철학적인 성찰로 이어졌으며 세속적인 것에서 탈속으로, 욕망에서 금욕으로, 순응에서 초월로 전환되어갔다. 또한 베다의 여러 신들에서 브라흐만이라는 궁극의 일자(一者)로 통일되어감에 따라 우빠니샤드 문헌에서는 환희를 가지게 하는 자, 궁극의 환희를 얻기 위한 지혜가 강조되어 궁극의 환희 상태는 브라흐만의 본질로 쓰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아난다는 브라흐만을 강조하기 위한 형용사로 그 역할이 축소되었는데 성적 기관을 통해 얻어지는 격렬한 즐거움의 상태, 대상을 향한 강렬한 갈망의 표현은 문맥 안에서 즐거움을 ‘가지게 하는 자’ 브라흐만을 내포하여 성적 기관과의 연결이 보다 간접적으로 표현된다.

우빠니샤드 시대에서 아난다를 6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살펴보면, 성적 기관과 연관하여 쓰인 아난다는 즐거움이 귀일하는 곳으로 불사이며 환희인 자식을 낳을 수 있는 힘으로 사용되었으며 CU에서는 즐기는 것, 노는 것, 교합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다. KsU의 모든 인용구는 성적 기관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는데 즐거움, 환희, 자손은 감각기관(오관)을 통해 얻어짐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분별력이 없으면 즐거움, 환희, 자손 모두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분별력을 가지게 하는 자’ 를 강조한다. 아난다는 즐거움과 관련하여 죄악의 반대어로 쓰이거나,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읽힌다. 인용문에서 환희와 슬픔은 함께 쓰이며 이 둘을 넘어선 궁극의 환희의 상태에 대한 암시가 보이기 때문에 환희의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음과 연관하여 쓰인 아난다를 살펴보면, 마음의 상태는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환희롭고, 평화와 완전함으로 충만하며 아무도 허공의 미세한 환희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단언한다. 인용문에서 마음은 여자를 끌어들이고 여인에게서 닮은 자식을 갖게 하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을 환희로 명상하라고 한다. 꼬샤와 연관하여 아난다는 지혜에서 나온 즙의 핵심으로 묘사되고 물질에서 숨, 마음, 지식의 덮개가 제거되어 환희가 주가 되는 궁극의 실현 상태를 보여주지만 아난다마야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은 아난다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숙면상태 또한 숙면의 일시적인 상태 또는 자기 본질에 대해 자각하기 힘든 부분 때문에 궁극의 환희로 이해되기 보다는 이와 근접한 환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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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린 _ 원광대학교 박사과정